네니아 제품 생산지를 찾아서 (14)
농업회사법인 (주)노고단식품
머리에 이고 팔던 묵, 가족을 먹여 살리다
현재 노고단식품의 대표는 강상길(57세) 님이지만, 이 이야기는 강상길 대표의 어머니 조석순(80세) 님에게서 시작된다. 조석순 님은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지리산 자락인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로 시집왔다. 시집와서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 도토리묵 장사를 시작했다. 집에서 도토리묵을 만들어 주로 산장이나 남원시장, 운봉시장 등에 팔았다.

△ 노고단식품 강상길 대표의 어머니 조석순 님의 모습. 노고단식품은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전남 남원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 노고단식품)
“어머니가 도토리묵을 머리에 이고 나가서 팔고, 말 그대로 가내수공업이었죠. 부모님이 나무로 불을 때서 도토리묵을 쒔어요. 가까운 산에 도토리나무가 많았고, 겨울내내 망치로 도토리 껍질을 깠습니다. 도토리를 오래 두면 벌레가 먹으니까 부지런히 손질해야 해요.”
강상길 대표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한테 묵을 보자기에 싸서 드렸더니 “맛있다”는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강 대표의 별명도 ‘도토리’라고 붙여줬다.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선생님이 전화해서 “그때(오래전에) 먹었던 묵이 너무 먹고 싶다”며 지금도 묵을 만들고 있는지 물었다. 이튿날 선생님은 학교 동료들을 데리고 찾아와 도토리묵을 아주 맛있게 드셨다고 한다.
강 대표는, “저희 어머니가 어려서부터 외할머니 따라 잔칫집에 다니면서 음식 맛을 배웠고, 외할머니가 만들던 묵이 찰지고 맛있었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가 결혼하고 아이들 공부시키려고 도토리묵 장사를 시작했으니, 그 손맛은 외할머니에게서 전해진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장작을 만들어 불을 때는 등 묵 쑤는 일을 거들었다.
도토리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먹어온 식재료로 추정된다. 농사를 시작한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 도토리가 발견되었으며, 부족한 식량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유물로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탄화된 도토리가 발견됐고, 창녕군 신석기시대 비봉리 유적에서는 도토리 저장고가 확인되었다. 한식문화사전에는 도토리로 묵, 밥, 죽, 떡, 국수, 수제비, 장, 전, 다식, 술 등을 만들어 먹었다고 기록돼 있다.
귀향한 아들, 지리산 권역을 누비며 판로를 열다
강상길 대표는 1969년에 태어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1년 무렵 친구의 제안으로 주말에 군고구마 장사에 참여했다. 그랬더니 한 시간에 1만 원이 넘는 돈을 벌기도 했다. 당시 월급이 30만 원이 채 안 되던 시절, 한 시간 장사로 1만 원을 버는 경험은 ‘사업의 감각’을 열어줬다.
마침 어머니 조석순 님은 도토리묵 식품제조업 허가 등을 준비해야 했지만 혼자서는 벅차서 큰아들인 강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 강 대표는 귀향을 결심하면서 설비와 용접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등포구에 있는 문래동에서 설비 관련 일을 배운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1994년 4월에 정식 식품제조업 허가를 내고, 회사 이름을 ‘노고단식품’이라고 지었다.
초창기 도토리묵 제조는 여전히 가마솥에 의지했다. 어머니가 불을 때면 강 대표가 주걱으로 저어가면서 도토리묵을 만들었다. 1년이 지나자 강 대표는 스팀 솥을 제작했다. 강 대표가 결합하고 난 뒤부터 지리산 뱀사골 일대의 식당부터 송광사, 낙안읍성, 무등산, 남원 시내의 모든 식당, 예식장, 콘도, 전주에 있는 남부시장까지 지리산 권역 전반을 도토리묵 시장으로 개척했다. 그 시절 현재 대표이사인 아내 김수영 님을 만나 결혼도 했다.
노고단식품이 지역에서 자리를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결국, 맛이다. 노고단식품이 만든 도토리묵은 쫄깃하고 탱글탱글하며, 다른 도토리묵과는 다른 식감과 맛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맛의 비결은 단순하지만 품이 많이 드는 ‘탈피’에서 시작한다.
맛의 차이는 탈피 여부,
‘전국 유일 탈피기’를 직접 만들다
“우리는 도토리 껍질 까는 기계를 직접 만들었는데, 똑같은 기계가 국내에 없어요. 제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죠.” 강 대표는 고향인 운봉에서 벼타작하는 탈곡기를 보고 이를 응용해서 도토리 껍질 까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국 여러 곳에서 이 기계 관련하여 연락이 와서 온라인상에 올렸던 사진과 영상을 모두 내렸다.
도토리묵 제조업체는 일반적으로 도토리 전분을 원재료로 사용하여 묵을 만든다. 노고단식품은 도토리 원물을 선별해서 구입하고, 직접 껍질을 벗겨서 가공한다. 노고단식품의 고재민 유통사업본부장은 “도토리 껍질을 벗겨서 만든 묵과, 껍질을 벗기지 않고 가공한 것은 여과 과정을 거치더라도 식감과 맛이 다르다”고 말한다. 수율과 색택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노고단식품은 생도토리 1kg을 가공하면 도토리가루가 약 300g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도 도토리의 품질이 좋을 때의 비중이다.
포털에서 도토리묵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면 도토리 껍질을 벗기지 않고 바로 갈아서 전분을 얻어내는 사례가 나온다. 여과 과정을 거치면 찌꺼기는 걸러지지만, 탈피한 전분과 그렇지 않은 전분이 같을 수 없다는 점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미세 여과와 전분 추출:
탄력·색·떫은맛을 다루는 기술
노고단식품은 도토리의 겉껍질을 깨끗이 벗기는 차별성이 있고, 여기에 더해서 여과 과정이 매우 섬세하다. 1차로 160메쉬, 2차에서 280메쉬, 3차에서 300메쉬로 여과하여 입자가 곱다. 이렇게 만든 도토리묵은 탄력이 좋아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낸다.
노고단식품은 점차 성장하여 도매 시장에도 묵을 공급했고, 전주에 있는 남부시장과 순창에 있는 시장을 90% 독점했다고 한다. 2010년에는 광주에 있는 시장까지 묵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노고단식품 강상길 대표는 이때 광주에 있는 고재민 본부장을 만나서 함께 사업을 키우게 됐다.
네니아와의 만남:
피드백이 제품 개발로 이어지다
고재민 본부장은 노고단식품의 유통사업본부장이자 별도 법인을 가지고 있는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네니아 광주사업단과 인연이 있었고, 2015년 무렵 네니아 사업단 워크숍에서 노고단식품의 묵류를 소개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노고단식품이 만든 묵의 맛과 완성도를 높게 평가했고, 네니아 본사 역시 “남다르게 맛이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노고단식품은 네니아에도 묵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네니아가 인정해줘서 노고단식품이 많이 좋아졌어요. 공장도 리뉴얼하고, 해썹(HACCP) 인증도 받았습니다. 또 전통식품 인증도 받았죠.”
고 본부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노고단식품과 협업해 묵류를 연구하고, 제품 개발까지 함께 했다. 전국의 학교 급식시장 등을 잘 아는 고재민 본부장은 투명한 청포묵에 색을 더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트의 붉은 빛을 가미한 ‘비트 청포묵’과 자연의 빛을 담은 노란색 ‘치자 청포묵’, 그리고 우무묵을 노고단식품과 함께 개발했다. 여름철 비수기를 고려해 콩국물도 개발했다. 중요한 것은, 노고단식품이 거래처의 피드백을 흘려듣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차를 타도 설비 투자는 아낌없이:
데칸타 도입의 이유
“네니아에서 도토리묵이 쓰다(쓴맛)는 피드백이 들어왔고, 연구 끝에 일반 침전식과 원심분리기 사이 단계인 ‘데칸타’를 쓰게 됐습니다. 데칸타는 설비가 회전하는 속도 조절이 가능한데 이것은 옛날 집 한 채 값이었죠.” 강상길 대표의 설명이다. 데칸타 방식은 큰 범주로 보면 원심분리기이지만 속도를 조절할 수 있으며,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고, 떫은맛을 조절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그 결과, 노고단식품이 만든 네니아의 도토리묵은 아이들 입맛에 맞게 떫은맛을 과하지 않게 조절하면서도 위생적인 HACCP 시설에서 생산하고, 전통식품 인증까지 받게 되었다. 네니아는 학교급식에 할머니의 손맛을 구현한 도토리묵을 제공하고, 영양교사는 학생들에게 전통 음식을 접하고 맛보는 기회를 만든다.
강상길 대표는 돈을 벌어도 사치하지 않았다. 자가용으로 경차를 타고 다닌다. 그러나 설비 투자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만큼 일에 집중하고 노고단식품을 아낀다는 반증이다.
네니아의 청포묵 / 메밀묵 / 우무묵 / 흑임자생콩국물
도토리묵은 전통식품 인증, 채식 식단으로 한몫
국산 청포묵과 메밀묵은 특히 귀한 존재다. 원재료 가격이 비싸 식당이나 시장에서 만드는 메밀묵이나 청포묵, 메밀국수 등은 수입 원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네니아는 수입이 불가피한 후추나 초콜릿 등을 제외하고는 국내산 농수산물을 원재료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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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니아 묵류와 흑임자생콩국물 등은 학교 급식에서 인기 많은 제품이다. 가운데 위는 삼색청포묵 샐러드, 아래는 도토리묵채. 오른쪽은 우무묵과 흑임자생콩국물로 만든 요리 (사진=-네니아)
“우리는 청포묵을 만들 때 국산 녹두 원물을 확보해서 직접 전분을 만듭니다. 녹두를 하루 불려 세척 후 분쇄하고, 여과기를 거쳐 분말을 추출하고 침전시켜요. 껍질은 모두 걷어냅니다. 녹두 전분은 발효 문제가 있어서 주로 겨울에 전분을 뽑습니다.” 고재민 본부장의 설명이다. 녹두로 만든 청포묵은 전주비빔밥에 꼭 들어가는 식재료이기도 하고, 탕평채의 주재료이며, 청포묵 샐러드로 먹어도 좋다.
네니아 메밀묵도 100% 국내산으로 만든다. 네니아 우무묵은 한천 분말 대신 제주산 우뭇가사리를 사용했다. 콩국물에 넣어서 먹거나 들깻가루로 샐러드를 만들어도 좋다.
네니아 도토리묵과 청포묵, 메밀묵은 끓는 물에 300그램 기준 약 10분 데치고 찬물에 식혀서 먹으면 쫀득하고 매끈한 식감이 좋다. 묵류 중에서도 네니아 도토리묵은 전통식품 인증을 받았으며, 네니아 묵류 등에는 일체의 화학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국산 대두 97%, 국산 흑임자 2%, 정제 소금 1%. 이것은 네니아 흑임자 콩국물의 원재료이며, 이 역시 노고단식품이 만든다. 이 제품이 출시되던 시기에 흑임자를 콩국물에 넣어서 판매한 곳은 거의 노고단식품이 유일했다. 이 제품은 노고단식품의 고재민 본부장과 네니아 상품개발팀, 노고단식품 강상길 대표 등이 협업해서 만든 제품이다.
전통과 서사를 담고 있는 노고단식품
지리산의 기상 담아 희망찬 발돋움
인터뷰 중에 고재민 본부장이 대뜸 물었다. “1년에 묵을 몇 번 사서 드시나요?”
생각해보니 도토리묵은 1년에 한두 번 사서 먹고, 메밀묵이나 우무묵은 접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저희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묵은 소비자들이 엄청 자주 찾는 식재료가 아니거든요. 메밀묵은 더 그렇고요. 회전율이 낮은 제품인 거죠. 그러니 시장을 개척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1년에 600만원 밖에 팔지 못한 적도 있어요. 16년 전 이야기죠.” 고재민 본부장의 설명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노고단식품은 열심히 시장을 개척했다. 학교급식, 군납, 단체급식, 식자재, 일반유통 등 판매처가 다양하다 보니 유지가 된다. 최근에는 기후급식, 채식 식단으로 도토리묵이나 메밀묵, 청포묵이 귀한 대접을 받는다.
강 대표가 태어난 운봉에 규모가 큰 호텔이 들어섰는데, 그 자리가 강 대표 조상들이 농사짓던 논이었다고 한다. 그 아래로 냇가가 있었고, 그곳은 아이들이 멱감던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다고 한다. 운봉에서 바라보면 지리산 바래봉이 보인다. 바래봉은 철쭉 군락이 유명한데, 그 이유가 예전에 외국인이 그곳에서 양 목장을 했는데 양이 다른 풀은 먹어도 철쭉은 먹지 않아서 철쭉만 남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서사를 안고 고향에서 노고단식품을 운영하는 강상길 대표, 그의 나이 올해 57세다. 무분별한 개발과 무차별적인 자본에 넘어가지 않고 조상들의 경험과 철학으로 길을 닦은 노고단식품이 지리산의 기상을 먼곳까지 전해주길 바란다.
노고단식품은 남원 시내에서 약 10분 떨어진 농공단지로 올해 2월에 공장을 이전한다. 신축한 설비와 증축한 설비가 기존보다 좋아지고, 공간도 넓고 쾌적하여 앞으로 더욱 발전할 모습이 기대된다.
2025년 2월
네니아 웹 매거진 편집부